얼마전 책 한권이 출간됐다. '부득탐승'이 그것인데 바둑계에서 나온 책으로는 오랜만에 선전(?)을 하며 세상의 관심을 끌었다. 일본에서의 출간도 시간문제인 듯하다. '부득탐승'이 출간되자 책의 내용보다도 제목에 대한 문제제기가 독자들 사이에서 나와 각종 인터넷바둑 사이트의 게시판에서 설왕설래했다. 부득탐승이 문법적으로 맞는냐는 문제였다.

부득탐승(不得貪勝)은 '위기십결'의 일결(一訣)이다.

위기십결은 한중일 바둑의 금과옥조로 바둑의 범주를 넘어 정치 생활 철학으로 넓게 사용되는 경구다. 그중에서 부득탐승은 지난친 욕심은 금물이라는  잠언으로 동양문화권의 아낌 없는 사랑을 받아온 말이다. 오늘날 바둑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창호의 육성을 전하는 책의 제목으로 '부득탐승'은 매우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일부 유저들의 부득탐승이 문법적으로 맞는냐는 질문은 일견 수긍이 간다. 부득탐승이 한글이나 영어문법에 견주어 무엇인가 논리적이지 않다는 의문인 것이다.

위기십결은 왕적신, 유중보의 저작설을 거쳐 근자에 '반신수'의 저작물로 특정된 매우 오래된 성어(成語)다. 그런데 위기십결은 왕적신 유중보 반신수가 작가라기보다는 만인(?)의 것이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송사열전과 민노행의 명수지문 등에서 '반신수'를 찾아 그를 위기십결의 저작자로 만드는데 일조를 한 필자도 이 점에 대해 머쓱하다. 왕적신 유중보 반신수보다 한참 앞선 시대의 위기십결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부득탐승의 첫번째 모습은 탐즉다패(貪則多敗)다.

1899년 돈황에서 도굴되어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던 자료가 1980년대 해제되는 과정에 나온 '돈황기경'(북주시대 557-581) 속에 탐즉다패가 나온다. 욕심을 부리면 진다 정도의 말로 부득탐승의 원형이다.

탐즉다패는 당시대 왕적신의 저작으로 전하는 위기십결의 기록에 탐부득승(貪不得勝)으로 등장한다. 탐즉다패가 탐부득승으로 바뀐 것이다. 욕심을 부리면 승리를 얻기 힘들다 정도의 말이다. 이 탐부득승이 부득탐승으로 바뀐 것은 명청대의 자료들이다. 조선시대의 각종 바둑책에도 부득탐승이 대세다.

'세고취화'도 비슷한 경우다. 돈황기경에는 세고기수(勢苦己輸)로 등장한다. 세력이 약하면 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고대의 승패를 말하는 단어는 영수(嬴輸)였다. 이 말이 후대로 오면서 세력이 약하면 타협을 하라는 말로 바뀐 것이다.

문자생활이 시간을 두고 조금씩 세련되게 발전하는 모습이다.  한문은 사실 억지(?)가 많은 문자다. 일자일의(一字一意)의 고립어로 세계의 현상을 모두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한문은 각종 성어를 만들어 약속을 한다. 고사, 전거 등이 두꺼운 사전 한권을 만들고도 모자란 것이 이 때문이다.

'부득탐승'을  한글 영어 등의 문법으로 현미경처럼 들여다 보는 것도 의미는 있다고 본다. 그것도 왜냐고 묻는 질문이고 공부이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부득탐승도 변할 것이다. 탐즉다패가 탐부득승으로, 탐부득승이 부득탐승으로 변한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부득탐승이 먼 훗날에는 탐승부득, 탐득부승 등으로 변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면 오만일 것이다. 세상은 변하기에 사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리 믿으면서도 부득탐승은 명구라고 믿어진다. 오랜 시간 바둑과 함께 해왔고 앞으로도 오랜 시간을 함께할 경구라 생각된다.

'부득탐승'을 구입해 일독했다.

순식간에 읽었다. 그리고 수일 후 바둑티브이 바둑리그 검토실에서 이창호를 보았다. 음료수를 따주자 받아드는 모습이 몹시도 조심(?)스럽다. 필자가 이창호를 가까운 곳에서 본 것은 두번째다. 책에서 읽은 구절이 떠올랐다.


바둑교실의 문을 기웃거리는 수많은 보통 어린이들에게 ‘설렘 가득한 너의 그 얼굴이 20여 년 전 나의 얼굴이며 노력을 이기는 재능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 분야에서 큰 성과를 낸 사람의 발언으로 감동이 있다. 용기와 시행착오는 역사 발전의 동력이다. 사람의 성장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비상한 경쟁의 시대앞에 놓인 오늘날의 바둑 꿈나무들에게 이보다 좋은 경구는 없을듯 싶다. 


한 사람의 바둑마니아로  '부득탐승'을 읽은 소감은 위기십결중 부득탐승이 이창호와 참으로 가장 잘 어울린다는 점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느껴지는 울림도 있었다. 돌부처와 부득탐승,  참으로 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