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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감_이론과 실제, 그리고 알파고 - 삭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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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감_이론과 실제, 그리고 알파고 - 삭감(4)
2018-11-10     프린트스크랩

III. 선분으로 반상 보기, 급소 보기

정방형과 꼭지점 이야기를 했다.
그것이 전부인가. 꼭지점 부근에 가까이 가지 않고서는 삭감 못하나?

『수법의 발견』시리즈에서 『선분이 만나는 자리』 제하의 책을 한 권 썼다. 바둑은 19줄 선분이 상하좌우로 엮여져 망(網, grid)을 이룬 세계. 그러니 선분의 존재가 돌의 존재보다 앞서는 현상이다. 돌은 선분이 만나는 자리, 바로 그 지점에 놓여진다.

돌을 제약하는 조건에 대해서 연역적으로 사유해보자.
괜찮은 아이디어로, 세모와는 또 다른 눈을 안겨주는 것이 ‘선분’으로 반상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선분 설명에 앞서서 세력에 대해서 잠깐 얘기하자.

20세기에 들어와 크게 발전한 세력. 반상에 그런 세계가 숨어 있었다니! 20세기 이전에 살았던 명인 국수들은 그 사실에 놀라 자빠질 뻔 했을 것이다.

3선은 실리선, 4선은 세력선, 그리 이야기한다.
세력은 ‘높이’에 대한 안목이 필요한 영역임을 알겠다.

그러니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세력이 제대로 활용되기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빌딩이 높아지고, 신분제가 폐지되어 신분 상승의 기회가 평등(적어도 법적으로)하게 주어진 것과 관계가 있을 듯한데… 어떨까?

빌딩을 보려면 눈을 들어 올리고 허리를 세워야 한다. 눈에 미치는 중력의 영향력이 크기에 높이 보는 것은 의식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

신성한 것은 높다. 권위는 높은 곳에 위치한다. 태백산 제단은 어디에 있는가. 산 정상에 위치한다. 교회와 성당의 첨탑은 높고도 높고 내부는 깊고도 깊다. 권위에 대한 우리의 막연한 믿음도 현실에서 물리적으로 상징되는 것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여전히 종교적 영향력이 막강한 티벳 문화. 그 문화가 살아있는 인도 라다크의 경우, 그들의 절(寺)이라고 할 수 있는 곰파는 어디에 있는가? 산 위에 있다. 군사적 요처에 위치한다. 멀리 지리적인 이점을 한 눈에 잡을 수 있는 곳. 몇몇 곰파 머리 위에는 풍상에 무너진 요새가 아직도 자취를 남기고 있다.

바둑에서 1924년 일본기원이 설립된 후 개인이 승부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나, 신포석의 등장으로 반상이 혁명적 기운을 겪은 것은 사회적 격변과 따로 떨어져서 생각하기 힘들다. 높이에 대한 저항, 권위에 대한 저항, 그것이 힘든 것은 바둑에서도 다르지 않다.

아마도 바둑에서 수직선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전후좌우 똑 같은 형식으로 이뤄진 것이 반상이니까 말이다. 아니다. 우리의 느낌은 정당하다. 언제나 전후좌우는 주관적인 것이다. 대국자는, 아래 위는 수직으로 옆은 수평으로 가늠한다. 또 중앙을 향해서 뛰어나갈 때 우린 그것을 수직으로 올라서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것이다. 만약 우리가 사방이 텅 빈 들판이나 사막에 떨어진다면 우리에게 동서남북은 가늠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지구에 떨어졌다. 그런 이해 있지 않은가. 소위 부조리나 실존주의 철학 말이다. 그럴 때 인간은 어떻게 자신의 걸음걸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답의 하나는 좌표를 세우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일단 설명이 되면 족한 것이다. 그러면 그에 맞추어서 행동을 할 수 있다. 고대인들에게 신화는 바로 그런 좌표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와 고대인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바둑에서 변과 중앙을 땅과 하늘로 구별짓고, 변으로 벌리면 수평으로 인식하며 중앙으로 한 칸 뛰면 수직으로 인식하는 것은 이미 그런 좌표를 문화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비록 내 손 안의 돌이지만, 정원을 만들거나 집을 한 채 짓는 것이 그 어떤 주어진 틀 속에서 이뤄지는 것임을 짐작하겠다.

이제 그런 무의식적인 틀이 아니라 의식적인 틀을 만들어보자. 무의식을 의식으로 통합하는 것이 정신의 성장. 반상이라고 다를 바 없다. 프로들은 아마추어들의 무의식적인 습관과 수법을 의심하는 사람들. 논리적으로 따져서 더 나은 이론을 만드는 사람들.

세력, 수직선 …, 그런 것과 인연 깊은 주제와 이치가 반상에 있다.

선분.

반상에서 선분은 어떤 조건을 제시하고 있나?
선분은 돌에게 어떤 지침을 제시하고 있나?

바둑부터 하나 보자. 실전을 보면서 이론을 구성하자.

▼ (1도) 제7기 기성전 제4국 백 슈코 vs 흑 조치훈


1도가 공부 자료다. 흑1(실전 흑35)은 삭감.

먼저 1~2분 가만히 음미해보시라.
고요하리라. 파문은 일어나리라.

자, 이제 문제다.

▼ (2도) 슈코와 조치훈 - 문제

문제는 이것이다.

왜 흑1인가?
왜 A가 아니고 B도 아닌가?

여기서 C와 D는 문제로 삼지 않는다. 단지 얼마만큼 깊이 들어가야 하느냐? 달리 말해 어느 선에서 삭감하는 것이 바람직하냐? 그것이 문제다.

이 장면에서 임해봉 9단이 이리 해설했다.
“삭감할 때는 상대가 그 돌을 ‘공격할까 말까’ 망설일 곳에 두어야 합니다.”

다들 그리 말한다. 설명은 그 정도다. 맞는 말인데, 부족하다. 왜 망설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주어지지 않고 있기에 그러하다. 망설이는 이유를 밝힐 수 없다면 ‘망설일 곳’은 지침으로 사용될 수 없다.

모든 착수는 주변의 조건에 달려 있다. 그 수가 바른 수인지 여부는. 좋은 수인지 여부는.

그러면 어떤 것이 삭감의 경우 고려해야 할 주변의 조건인가?
답은 ‘선분’에서 찾을 수 있다.

3도를 보면서 생각하자.
“선분이 이어지면 돌은 강하다.”

선분이 이어지면 돌은 강하다?
이건 지난 번 글에 쓴 것이다. 세모와 꼭지점 다루면서 잇는 것을 잠깐 다루었다. 같은 이치가 작동한다.

▼ (3도) 선분이 이어지는 자리

흑1~흑4는 모두 잇는 수로 알려져 있다. 장단이 있을 뿐이지 서로 간에 절대적인 우열은 없다. 판단의 기준이 2개이기 때문이다.

튼튼함과 효율이 두 기준이다.
두 기준은 서로 함께 하기 힘든 개념이다.

예전에 어느 기사가 도전기를 앞두고 이랬다. “두텁게 두겠습니다. 단, 집도 부족하지 않게.” 그 말 들은 어느 기사, “바둑을 혼자 두나?” 두텁게 두면 당연히 집은 부족하다.

흑1은 튼튼하다. 하지만 효율 면에서는 가장 뒤처진다. 흑4는 효율 면에서 가장 추천할 만하지만 돌 두 개를 잇는 점에서는 그리 튼튼하지 못하다.

그러니 흑1~흑4 중에서 어떤 수를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튼튼함과 효율의 전제에 달려 있다.

유의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흑1을 보자. 돌 하나(▲)는 상변에서 하변으로 이어지는 선분 위에 놓여 있다. 다른 하나(●)는 우변과 좌변을 잇는 선분 위에 놓여 있다. 그 두 개의 서로 다른 선분이 흑1에 의해 하나로 연결된다.

하나의 선분 위에서 돌 두 개가 바로 옆에 딱 달라붙어 있다면 그건 연결된 것이다.
고로 튼튼하다.

이를 상대와 연계해서 본다면, 이렇다. 상대와 같은 선분 위에 돌이 놓이면 위험하다. 다른 선분 위에 돌이 놓이면 위험에서 벗어난다.

효율은 어떻게 정의되나?

이런 식으로 표현된다. 돌이 얻어낼 수 있는 효과가 크면 클수록 효율은 높다.
3도에서 흑2는 한칸, 흑3은 두칸, 흑4는 세칸, 자신의 다른 돌과 떨어져 있다. 그 간격이 넓을수록-백의 수단 여부를 떠나서-넓은 간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넓은 공간에 영향을 미치는 돌은 효율이 높은 수다.

자, 실전으로 돌아간다.

▼ (4도) 만약 여기 흑1이라면 – 적당

백2 공격엔 흑3 두어 하변 흑(▲)과 멀지만 하나의 선분 위에 놓여 있다.
그리고 상변 쪽 백돌(△)과는 같은 선분 위에 놓여져 있지 않다.

▼ (5도) 만약 여기 흑1이라면 – 부적당(1)

흑1은 백돌(△)과 하나의 선분 위에 놓여지기에 위험하다. 백2는 상변 백돌(△)과 같은 선분 위에 놓여지기에 튼튼하다. 흑은 흑3 도망쳐도 하변의 흑(▲)과는 한 줄 비껴져 있어 연결이 쉽지 않다. 당장 백A 흑B 백C 심한 공격에 위험하다.

▼ (6도) 삭감 - 부적당(2)


흑1에는 백2로 만족할 수 있다. 흑1은 여전히 상변 백(△)과 동일한 선분 위에 놓여져 있어 불안하다. 하변 흑(▲)과도 한 줄 비껴져 있어 연결감이 쉽게 와 닿지 않는다.

작위적인 설명인 듯한데?
반상 19줄. 하변 흑돌(▲)과의 거리가 멀어서 별로 영향을 주고받지 못하는 거 같은데?

아니다. 현실은 이렇다.

반상은 초반 돌 몇 개만 놓여지면 19줄 반상이 아니다. 삭감 운운하는 단계에서는 반상의 크기가 9~13줄 정도로 줄여져 있다. 오늘 문제에서 보면 흑1과 하변 흑(▲)과의 간격은 불과 7줄이다!

7도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흑7 이후엔 숫자 순으로 밀고 나가 백이 오히려 엷다. 백의 안위 먼저 백은 걱정해야 할 판이다.

▼ (7도) 하변과 연결이 바로 눈앞이다 – 공격 없다


▼  (7-1도) 하변과 연결이 바로 눈앞이다 – 공격 없다

이런 식이다.
어떠신지?
선분을 중심으로 하는 이해가 어느 정도 설명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필자 생각으로는 세모 못지않게 설명력 큰 이론이라고 본다.

몇 개의 사례를 더 보겠다.

▼ (8도) 엡따, 모르겠다 제7기 기성전 제2국 백 슈코 흑 조치훈

백3(실전 백18)이 기막힌 삭감 자리였다.
“엡따, 모르겠다!” 그리 말하고서 두드린 착점.

백3은 흑2와 하나의 선분 위에 있다. 아, 그래? 그러면 위험하지 않아? 대신 상대에 대한 압박도 강하다.

초점은 두 개 더 있다.
좌변의 백1은 우변 진행을 예상한 수다. A까지 벌리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우변 싸움이 벌어지면 좌변이 튼튼한 것이 좋다. 돌의 간격이 좁으면 효율은 떨어지지만 대신에 튼튼하다. 우변 백3과 좌변 백과의 간격은 이제 9줄밖에 되지 않는다. 반상에 돌이 불과 18개밖에 놓여지지 않았건만!

다음 4, 5가 백3에 연이은 수순인데, 4에 대해 5 한칸도 눈여겨 볼 만하다. 백3과 같은 선분, 그리고 한 칸 높여 받았다. 백B 날일자 받지 않았다. 백B 날일자도 튼튼하지만 백3에 대한 지원을 고려한다면 한 줄이라도 더!

재밌는 거 하나 보자.
다음 장면의 이름을 붙인다면, 이리 붙이겠다. “약간 무거운 법수(法手)”

▼ (9도) 1977년 약간 무거운 법수 백 加藤正夫 흑 林海峰

제2기 기성전 도전자 결정 3번승부의 제2국으로 초점은 백4(실전 백46)이다.

이런 대화 오갔다.
“백4는 이런 정도일는지요.”
“약간 무거운 느낌입니다. A 정도 두는 게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백4는 보나마나 감각적으로 둔 것이다. 손이 먼저 알아서 간 것이다.
왜 그런가.
백2와 백(△)가 만나는 자리. 곧 선분을 이어주는 자리.
세모 도형의 꼭지점 자리.

백4와 백A 중에 어느 수가 좋은지는 판단이 어렵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초점은 이것이다.

프로라면, 누구라도 백4에 손이 간다. 눈이 간다. 왜냐.

선분이 이어지는 자리,
좌우가 만나는 자리,
세모를 구성하는 꼭지점 자리.


선분이라…
다케미야를 다시 한 번 보자.

▼ (10도) 다케미야 조심

흑1은 두터운 수. 백2는 실착으로 흑3 근처에 두어야 했다. 흑3이 큰 곳으로 이로써 흑이 우세하다. 멋진 중앙 감각!

만약 꼭지점 이론이나 선분의 이론을 따른다면 흑3은 A에 두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변과 하변의 흑돌(▲)이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는 상변 백(△)이 눈에 거슬린다. 한 칸 떨어지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여기 흑3에 두면 백이 침입하기 힘들다. 

자, 이제 하나만 더.

11도는 오청원과 기타니가 만난 첫 번째 10번기 승부 제1국이다. 아직은 슈사이 명인이 은퇴하지 않았고 또 5단 시절이라, 두 기사 7단일 때 기계 제1인자를 두고 싸울 때만큼의 긴장감은 대국장에 없었다.

두 기사 대국하다가 말고 – 24수까지만 두었다던가, 그리고 잠시 스톱 했다던가 – 기타니의 처갓집 있는 지오쿠타니 계곡(地獄谷)으로 놀러갔으니 말이다. 좋은 시절이다. 부럽다. 그런 시절 다 지나갔다!

기타니 처갓집은 여관(後樂館)을 운영했는데, 필자도 2,000년 쯤 들러 하룻밤 유숙했다. 바로 신포석을 논의하던 그 방에서. 밤 깊었다.

▼ (11도) 오청원과 기타니 5단 시절


흑2가 계곡에서 돌아온 다음 대국을 개시했을 때 둔 것.
흥미로운 것은 마음의 변화. 본래 두고자 했던 자리는 A 침입이었다 한다. 하지만 휴향지에서 두 기사 연구했다. 신포석을 연구했다. 그래서 중앙과 속도에 마음을 두게 되었다 ….

이 장면에서 초점은 역시 선분이다.
응? 어디에 선분?

사선(斜線)의 선분이란 게 있다.
백1과 좌하 백(△)이 사선을 이룬다.

흑2는 B도 생각할 수 있다. 역시 그 자리도 흑2 못지않게 사선(斜線)의 선분에 속한다.
아마도 여기 흑2가 적절할 것이다. 눈목자 삭감 자리인데, 다음 백이 C 모자 공격을 해도 흑a 백b 흑3으로 수습한다. 그건 탄력 좋은 모양이라 공격에 잘 대처할 수 있다.

유명한 이야기로, 기타니는 이 바둑을 진 다음, “백2가 패착이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백2? 그건 좌상귀 외목을 말한다. 이 바둑은 흑1 첫 수는 우상귀 3三, 백2는 좌상귀 외목, … 그리 진행되었다.

외목은 3선 자리. 그러니 4선 이상의 높은 자리가 효율이 높다고 본 신포석의 주창자로서는 3선에 위치한 외목은 아쉬운 바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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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정신 |  2018-11-12 오후 10:23:3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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