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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고향을 여행하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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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고향을 여행하다 (3)
2017-10-31     프린트스크랩
▲ 저포 기물. 19로 바둑판과 비슷하다.


3. 상박간 고(考)

죽간의 한 종류 상박간은 '상박초간(上博楚簡)'으로 불리는 중국 상해박물관 소장의 전국시대 초나라 죽간이다. 이 자료는 1994년 홍콩 골동품시장에 나와 손님(?)을 기다리던 중 상해박물관의 한 연구원에게 발견되어 대륙으로 돌아왔다가 2001년 상해박물관 소장 '전국초죽서'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실체가 드러난 자료다.

'전국초죽서'의 발표 이후 '공자시론' '치의(淄衣) 항선(恒先)' 등의 교독기(校讀記)가 계속 발표되었는데 발표 때마다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여 아직도 정론이 모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들 교독기속에 '곽영병(郭永秉)'의 45호간(號簡) 교독기가 주목된다. 2009년 1월말에 발표된 이 교독기는 바둑의 시원을 알 수 있는 박혁(博奕)에 대한 분석이어서 바둑계에 큰 의미가 있다. 곽영병은 상박간 45호간을 최초 해독한 이영(李零)의 해독을 충실하게 인용한다.
 
旣爲金桎 或(又) 爲酉(酒) 池 (厚)樂於酉(酒) 専(溥) 亦(夜) 以爲槿(淫) 不聖(廳) 元邦之正(政)- 상박간 45호간.

이영은 위의 문장에서 ' 専亦'을 '溥夜'로 읽고 철야(徹夜)라는 뜻이다 말한다. 한자 溥에는 遍의 의미가 있다고 말하며 근거로 '사기은본기(史記殷本記)'의 '說紂爲長夜之飮'을 든다. 주왕이 날을 새워 술을 마셨다는 내용이다.

곽영병은 위의 문장 중에 부야위음(溥夜爲飮)을 고문자학자 이영, 심배의 의견을 들어 '부야이위음(溥夜以爲淫)'으로 고증한다. '박으로 날을 새워 놀았다'는 것이다.
 

이 부(溥)가 중요한 화두다. 溥는 박(博, 薄) 등으로 등장하는 고대의 반상게임이다. 허신이 이 박(薄)을 위기(圍碁)라 한 이후 薄이 위기로 불리는 계기가 되었다. 공자의 '박혁' 맹자의 '박' '혁추' 등이 그것이다.

곽영병은 '博奕以爲欣'을 박혁은 즐기는 것이다며 선진(先秦)시대에 은의 주왕의 폭정을 고발한 내용이라 한다. 곽영병은 설문을 비판적으로 분석하여 博 ,専, 薄은 결국 같은 자(字)라 한다.

곽영병은 설문의 '奕 圍碁也. 从卄 亦聲 亦是奕'의 대목을 관자의 聖人者聖諸本而遊於樂大昏也博夜也(성인이 고상한 오락을 위해 대혼을 만들었다. 대혼이 박야다)와 곽말약의  大昏의 昏이 당시 旬字의 오인이라며 고문언에 大旬과 大約의 자료를 들어 大約이나 나 같은 종류다며  溥夜가 곧 博奕이라는 결론을 낸다.

다시 말해 위기는 곧 박혁이라는 거다. 논어의 박혁이나 맹자의 박등을 모두 위기라 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곽영병은 '회남자'를 들어 '선진'시대로 오면서 사람들은 '박혁'에 시간과 돈을 기꺼히 투자하여 생업과 직장일에 소홀히 하는 풍토가 생겼다고 한다.  '문선'  박혁론에 나오는 바둑에 취해 하는 일을 팽개친다. 자는 것 먹는 것도 잊고 날밤을 새우고 촛불을 태우며(好翫博弈,廢事棄業忘寢與食,窮日盡明,繼以脂燭)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곽영병은 '문자(文子)'를 들어 박혁에도 도가 있나 묻고, 있다는 대답을 구한다. 그리고 '문선(文選)'을 들어 오늘날 정무를 폐하고 박혁에 미친 사람들이 있다며 업무태만에 침식을 잊고 많은 사람들이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불만도 소개하며 박혁을 즐기는 것 이상으로 부정적 인식도 있었다 말한다.

곽영병은 상박간을 통해 박혁은 걸주가 만든 오직 즐기기 위한 오락이라 한다. 박혁은 즐기는 것 이란 의미의 한자어 爲欣 爲樂 爲歡을 '서경잡기' '안씨춘추' 등에서 찾아 고증을 한다.


박혁이 위기였다는 주장은 맞는 말인 듯하다. 박, 혁, 박혁으로 불리던 위기와 다른 고대의 반상게임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수많은 문헌자료의 큰 흐름은 박혁과 위기의 일관성을 보여준다. 상박간에 기록된 이 한 문장에 박혁이 거론된 것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위의 문장을 해독해 보면 이렇다.

'이때에 와서 주지육림에 마시고 박을 하며 날밤을 새우고 놀며 나랏일은 듣지 않았다. -이청 번역. 


상박간의 20여자에 불과한 문장의 해독을 위해 수십 종의 옛 고서의 전고가 인용되고 검토되는 모습은 학문의 치열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곽영병은 박혁이 상은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나 사실은 전국시대에 발견되었다며 '세본' '문선' '태평어람' '중흥서' 등에 등장하는 박혁 위기를 총체적으로 검토한다. 상은의 마지막 왕 걸주왕의 발명설도 사실은 후대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혁과 위기는 같은 종류였다는 주장은 일관적이다.


박혁으로 음주하며 날밤을 새우며 정사를 멀리 했다는 '상박간고'의 검토는 삼국지(三國志) 시대로 오면서 박혁보다 재미있는 오락은 없다(一定要以博奕取樂怩)는 단계에 이른다. 전국시대에서 삼국시대를 관통해 오는 중국 상류층의 오락은 단순하다. 음주 박혁 격구와 여자들을 마차에 태우고 희희낙락(飮酒 博戱 擊弄 與女子載馳 環城過市)하는 것이었다. 생산적인 것보다는 소비 향락이 당시 상류층의 생활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좌전'에 처음으로 보이는 술이 연못 같고 고기가 언덕 같다(有酒如繩 有肉如陵)의 반영이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인 것이다. 술이 연못 같고 고기가 언덕같다는 좌전의 구절이 한서(漢書)에 와서는 한무제 때 사방의 사신들에게 주지육림의 접대를 했다(贊漢武帝事 酒池肉林以響四夷之客)로 나타난다.  한 단어의 역사적 변화의 모습이다. 

역사는 주지육림과 박혁이 한 자리에서 기능해 왔음을 적시한다. 상박간의 박혁이 설문의 위기를 거쳐 박혁과 위기는 같은 것이란 인식을 얻는 과정에 '좌전'이 못을 박는다.


노나라 양공 25년의 기록으로 기원전 548년이다. 역사는 이때를 춘추시대라 했다. 중원은 진, 초, 제, 오, 월, 노나라 등 10국이 갈등하며 이름뿐인 '서주'의 보위자를 자청하던 시대다. 춘추좌전은 노양공의 어느 하루를 이렇게 기록한다.

‘자산’과 ‘대숙문자’는 정치가다. 그들이 정나라의 실력자 영희가 군주를 가볍게 보고 군주를 바둑을 두듯 바꾼다고 말한다. 정치는 농사와 같아 밤낮으로 생각하고 행하되 무엇보다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바둑을 둘 때도 전심전일해야 하거늘 정치를 그렇게 함부로 해서야 되겠느냐 푸념을 하는 대목이다. 원문은 바둑 두듯 군주를 쉽게 본다가 맞지만 전체적인 의미는 군주를 교체하는 것이 방점이다.

같은 내용에 등장하는 '안자'는 침시고(枕屍股)라는 유명한 전고를 만든 사람인데 이곳에 등장하는 자산과 안자는 공자제자들과는 관계없는 사람이다. 이 기록은 2559년 전의 바둑기록이다. 원문은 圍碁가 아닌 弈棋다. 바둑의 대국 장면은 아니지만 바둑을 빗대어 정치행위를 논하는 담론의 수준이 당시의 바둑의 보급 척도를 가늠케 한다.


이 때 노나라의 수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어린 공자가 태어나 소꿉놀이를 하면서도 질그릇 파편을 모아놓고 제사 놀이를 하며 성인의 면모(?)를 나타내기 시작한다. 훗날 공자가 '노느니 바둑이라도 두어라' 한 것을 바둑이다 아니다 갑론을박이 있지만 구차한 말들이다.

[子產喜以語子大叔.且曰.他日吾見蔑之面而已.今吾見其心矣.子大叔問政於子產.子產曰.政如農功.日夜思之.思其始而成其終.朝夕而行之.行無越思.如農之有畔.其過鮮矣.衛獻公自夷儀使與甯喜言.甯喜許之.大叔文子聞之曰.烏呼.詩所謂我躬不說.皇恤我後者.甯子可謂不恤其後矣.將可乎哉.殆必不可.君子之行.思其終也.思其復也.書曰.慎始而敬終.終以不困.詩曰.夙夜匪解.以事一人.今甯子視君.不如弈棋.其何.以免乎.弈者舉棋不定.不勝其耦.而況置君.而弗定乎.必不免矣.九世之卿族.一舉而滅之.可哀也哉.傳會于夷儀之歲.齊人城郟.其五月.秦晉為成.晉韓起如秦蒞盟.秦伯車如晉蒞盟.成而不結.춘추좌전 북경 중화서적.] 


고대에는 바둑판 위에서 바둑만 둔 것이 아니고 여러 종류의 게임을 했다는 김달수의 연구가 있다. 연구에 따르면 . 바둑은 바둑판(?) 위에서 행하던 여러 종류의 게임 중 하나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 여러 종류의 게임의 통칭이 '박혁'이란 것이다. 고대에 바둑과 쌍벽을 이루던 '저포'가 19로 바둑판을 사용한 것을 보면 김달수의 앞으로의 연구 성과가 기대 된다.

그렇다 해도 박혁을 바둑에서 분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아니 불리할 수도 없다. 박혁이 고대의 반상게임을 총칭하던 명사라 하더라도 그 반상에서 함께 출발하여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이 바둑이라면 '박혁이 바둑이고, 바둑은 박혁이 아니고 무엇인가?' 다만 우리는 그런 사례와 사실이 역사 속에 존재해 왔다는 것을 직시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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