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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선생의 한가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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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선생의 한가위 (3)
2017-10-09     프린트스크랩
▲ 연암문고 소장본 칠사고. 표지와 내용.

박지원의 아들 박종채는 자신의 아버지를 그리는 책을 한권 남겼다. 과정록으로 평범한 아들이 감당(?)하기 힘든 위대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날것 그대로 살아 있다. 박종채는 박지원이 면천군수 시절 만난 한 사형수를 기록한다.


박지원이 면천에 부임한 후 객사 뒤편에 있던 옥사(獄舍)에 죄수라고는 사형수 한명뿐이었다고 한다
. 관찰사 홍계희 박종악 한용화로 이어지는 천주학 단속으로 면천옥사에 있던 몇몇 신자들마저 부임 즉시 석방하고 새로 잡혀오는 신자들을 날마다 면담을 하며 설득과 회유를 하여 불구속 상태로 천주교를 단속한 것이 박지원이었고, 이러한 지침이 낳은 결과였다.


정조는 박지원에게 느슨한 천주교 단속을 당부한 바 있었다
. 박종채는 면천옥사 안의 사형수를 기록한다. 추운 겨울 불기운 한점 없는 옥사에서 얼어 죽을 것을 염려한 박지원이 칼을 벗겨 주고 옥을 지키는 옥리의 방에서 함께 기거하며 겨울을 나게 했다는 것이다. 사형수는 박지원의 처분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도주와 같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감동하여 감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형수의 신상은 여기까지다.


이 에피소드는 박지원의 목민관의 자세를 직접 보여준다
. 눈치 보기와 책임 회피 등으로 이골이 난 벼슬아치들의 생리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모습이다. 박지원은 면천에서 이방익사건과 칠사고 두 종의 책을 쓴다. 이 두 종의 저술 외 충청도에서 발생한 십여 건의 살인사건을 다룬 관찰사의 판결문에 관여를 한다. 사형수의 옥안은 국왕에게 보고되는 탓에 문장가 박지원의 도움(?)이 필요했던 듯하다.


그런데 이 사형수의 신상과 사건이 일성록과 심리록에 등장하여 흥미를 끈다
. 옥사에 있던 사형수는 이유복(李有卜)이다. 이유복옥안의 초검관은 '유인국'으로 박지원의 직전 군수고 복검관은 '박정택'으로 박지원과 같은 날 당진현감을 보임 받은 인물이다. 이유복은 박지원이 부임 5개월전 사건을 일으켜 초검을 받은 후 박지원 부임 후 관례에 따라 인근 수령인 당진의 박정택에게 복검을 받은 것이다.


일성록과 심리록은 이유복옥안을 이렇게 정리한다
. 이유복은 면천군의 영탑사에서 나무를 하는 사람(負木漢)으로 아랫마을 배씨 가옥에 혼자 집을 보고 있는 처자 배아기를 겁간하려다 배아기의 완강한 저항으로 실패를 한 후 열흘 후에 수치심에 배아기가 목을 매 자살을 한 바 죄책을 놓고 고민하는 내용이다. 배아기의 억울한 사연을 들은 어머니 윤씨의 고발로 시작된 이 사건은 초검관과 복검관이 자살이 분명하다 했고 배아기가 이미 죽은 것을 빌미로 이유복이 겁탈시도를 한사코 부인하면서 옥안은 더욱 꼬인다.


정조는 이 사건을 형조에 더욱 다그쳐 문초를 하라 한 후 배아기는 미수에 그친 겁간에도 정절을 덕목으로 자결을 한 열녀라며 정려를 하라 지시를 한다
. 이유복은 2년 이상 사형수로 옥사에 대기를 한 듯하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덕목은 유교의 가르침이지만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재주를 평가하는 사람이 박지원인 것은 분명하다
. 박지원은 면천에서 재주 많은 어린 아전을 만나 그에게 글을 가르쳐 조선의 시인으로 만든다. 유한집(兪漢輯)이 그 사람인데 그의 시가 50여 편 오늘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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