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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선생의 한가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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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선생의 한가위 (2)
2017-10-03     프린트스크랩
▲ 복지겸과 그의 딸의 전설이 있는 수령 천백년의 은행나무. 천연기념물로 면천 객사터 마당에 있다.

박지원의 면천군수 재임 기간은 37개월이나 된다. 평균 1년에 불과한 군수임기가 무려 4년에 걸쳤다는 것은 정조의 특별한 배려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환갑이 넘은 박지원은 면천에서 여유를 만끽한다.  박지원은 이때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집 선반에 있는 바둑책을 찾아 보내라며 여름날  이보다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면천군은 3만여 명의 백성들이 사는 호서지방의 대번으로 관아시설 중 무려 82칸에 달하는 객사(客舍)가 그것을 증명한다. 1767년 출간된 관찬지리지 여지도서는 공주객사 37칸 홍주객사 43칸을 기록한다. 공주와 홍주는 호서지방의 중심으로 관찰사와 목사가 근무하는 곳이다.

면천객사 82칸은 강릉의 임영관과 상주의 상산관도 같은 규모로 조선초기 바다를 통해 조선으로 온 명나라 사신들의 편의를 위해 82칸 규모로 지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면천객사의 현판은 조종관(朝宗館)이다. 박지원은 이곳으로 부임한 후 객사의 동익(東翼)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박지원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인근 신창 덕산 해미 등에서 찾아온 선비들과 한양에서 찾아온 북학파 인사들이었다. 면천객사 앞에는 이미 천년에 가까운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었다. 고려장군 복지겸과 딸의 전설이 전해오는 오래된 은행나무다. 면천은 미신이 강한 곳이었다. 성읍 안에 아전들이 모시는 성황사가 있을 정도였다. 면천인들은 이 객사에 귀신이 산다고 믿었다.

부임초기 아전들이 귀신담을 끝없이 말해도 오불관언인 박지원 앞에 드디어 객사 귀신이 등장한다. 아들 박종채의 기록을 통해서다. 박지원은 객사에서 손님들과 담소를 하다가 흥이 나면 동문으로 나와 탁 트인 벌판을 보며 시원해 했다. 이때 동리의 한 여자가 갑자기 미쳐 원님행차를 방해한다.

- 나는 객사 귀신이다. 그런데 신임 사또가 객사에 들어온 후 기운이 너무 강해 동문으로 피해 왔거늘 오늘 이곳으로 (또 와) 나를 괴롭힌단 말이냐?


아전들은 이 여자를 즉시 포박하여 동헌 기둥에 묶는다. 그리고 하루 동안 박지원이 정사를 펼치는 장면을 보고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이후로 객사 귀신은 다시 면천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기록이다. 박지원은 20세에 스승 이운영에게 주역을 배웠다. 면천에서도 주역을 손에서 놓지 않고 골정재에 일초정을 지으면서도 주역 태괘에서 형상을 취했다 소감을 피력한 바 있다.



▲김윤식 간찰. 박지원 사후 1백년 후 운양 김윤식이 면천에 유배를 온다.
김윤식은 박지원 손자 박규수의 제자였고 박지원의 손녀 김씨는 양어머니라는 인연이 있었다.

박지원을 무상으로 찾아온 사람이 이희경이다. 이희경은 북학파의 엘리트로 북경을 5차례나 다녀온 중국통이기도 했다. 이희경은 박지원의 모진 소리를 여러 번 들은 박제가나 유득공과 달리 시종일관 박지원의 지음을 받는다. 박지원이 임종을 지킨 사람도 그다.

이희경은 '설수외사'란 저술을 남겼다. 책이 불과 수십년 전 발굴되어 북학파 인사들 중 가장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박지원의 면천 집필 속에 이희경의 자료가 보이는 것도 이유가 있다. 이희경은 박지원이 죽은 후 불과 몇달 후 61세의 나이로 운명한다. 스승과 제자로 30년의 세월을 보낸 두 사람의 스토리가 스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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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포석짱 |  2017-10-10 오전 9:56:2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어이 지내시나? 궁금하이(킹포석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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