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분대장 시계

얼마 뒤 나는 사단사령부로 자리를 옮겼다. 귀국을 몇 개월 앞 둔 나는 그 곳에서 월남군 정보대 각 경찰서 등과 협조하여 베트콩 귀순 공작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12중대 작전에 참가하게 되었고 소식이 궁금했던  H 하사도 만나게 되었다.

시내 안가를 돌아 귀대 하던 길에서 연대 작전을 끝내고 마무리 차 야영지로 철수하던 3대대 대대장과 조우하게 된 것이다. 12 중대장도 대대장 지프차에 동승하고 있었다. 우리는 19번 도로 어느 지점에서 마주쳤는데 그때 우리가 어떻게 하여 그 지점에서 마주쳤는지 또는 노란 번호판으로 위장한 내 차를 그들이 어떻게 발견할 수 있었는지는 지금도 19로 바둑판에서나 물어볼 일이었다. 하여튼 나는 제대 말년에 그들이 계획하고 있던 마을 작전에 참가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끌려온(?) 것이었고 H하사와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잠시의 시간을 갖일 수 있었다 . 

그 마을은 첩보 상에도 적성마을로 구분되어있는 마을이었다. 그러나  당시 채명신 주월한국군사령관은 “백 명의 베트콩보다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지침을 내리고 있던 터라   가능한 한  마을 작전은 자제되고 있는 실정이었는데 대대장은 마을 작전을 감행하려 한 것이다. 마을 작전은 사전에 인근 월남 지방군과 군청 경찰서 등과  긴밀한 연락을 취해야 하는데 그것은 연대에서 이미 조치를 취해 놓았으니 나는 마을 점령 후 베트콩 또는 그 동조자를 선별하는 작업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임무였다. 얼굴을 알고 있는 월남 지방군이나 경찰서에서도 못하는 일을 외국인인 내가 어떻게....? 나는 다음 날 관활 경찰서나 찾아가기로 마음먹고  우선 H하사를 만나보기로 하였다.     
      
 

장소 2 : 야영지는 몇 개월 전까지 2대대의 어느 중대본부 자리였다. 관망대, 벙커들, 그리고 교통호 등이 모두 그대로여서 야영지가 아니라 아직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진지였다.  관망대에서 바라본 경치 또한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앞으로 약 200M 전방에는 19번 도로가 안케와 퀴논으로 이어져 달리고 있고 뒤로는 누이 바(바 산)가 오지랖 넓은 치맛자락을 내리고 있었다.  바 산의 정상을 향해 수 십 개의 능선들이 그림처럼 이어져 올라갔고 그 사이 사이 계곡들로부터 물줄기가 내려와 야영지의 뒤쪽에 제법 넓은 소(沼)를 만들었다.

소에는 작전에서 돌아온 중대원들로 가득 차 여름철 수영장을 방불케 했다. 모두는 작전에서 막 돌아온 터라 피곤한 상태였지만 수영장 같은 물터를 만나니 힘이 저절로 솟는 것이었다. 아수라장이다.

언덕 위에서 소를 내려다보며 H하사를 찾았다. 그를 찾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무리들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어느새 그들 틈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H하사의 목을 끌어당기며 물씨름을 걸었다.

“어, 누구야? 어떻게 온 거야?”

말도 다 끝나기 전에 그는 물속으로 잠수했고 우리는 물속에서 한참동안 서로의 몸뚱이를 밀고 당기고 가랑이를 들어 올려 뒤로 넘어진 쪽이 지게 되는 일명 물씨름에 몰두했다. 힘으로 하는 것은 그를 이길 수 없다. 민첩성으로 버터야 한다. 
      

잠시 후 그가 머리를 들어 올리며 휴전을 표시했다. 손목에 차고 있던 “분대장 시계(분대장 급 이상에게 지급되는  작전용 시계)”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는 것이었다. 소대원들은 일제히 잠수하여 자갈과 모래가 깔린 바닥을 더듬기 시작했다. 제일 깊은 곳이 키 높이에서 머리 하나 더 있을 정도여서 찾으려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녹색 야광 시계를 손에 들고 나온 병사는 없었다.

“내가 하나 구해 줄 터이니까 그냥 나가서 이야기나 하자구.”

우리는 팬티만 입고 강 건너 밀림으로 휩 쌓인 바 산의 우람한 모습이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 보니 황갈색으로 탄 그의 근육질 피부는 총알마저 튕겨져 나갈 것 같았다. 

“야, 이제 베트콩 다 되었네!”

“이거 왜 이래.  이젠 나도 어엿한 고참 이야.  이젠 고향 생각도 잘 안나. 보초 설 때 이 외에는....”

“이 때 조심해야 해.  고참입네, 하고 까불지 말고. 요즘 한국군 기강이 너무 해이되어 있어. 베트콩들이 모두 한국군만 보면 무서워 한 줄만 알고 있다니까. 그러다가 당해. 그러니까 너도 조심해야 해.”

“허긴 나도 가끔은 내가 전투 지역에 온 것인지 토끼몰이 하러 온 것인지 착각할 때가 많아. 이번 작전에서도 그랬어. 우리 대대는 몰이꾼이었고 사냥은 1대대 2대대에서 했거든. 도망치는 적들 쫒아가지도 않았어. 놈들은 포위망 속에 있으니까.”
 

“맞아. 베트콩들이 한국군과 조우하기를 꺼려하는 이유가 한국군은 치밀한 작전을 짜거든. 근거지와 이동 경로를 면밀히 파악한 뒤 작전을 하니까. 그래서 그들도 한국군  부대가 있는 곳은 위험지역으로 분류해 놓고 멀리서만 움직이는 것이야.“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군 작전에 가끔 문제를 드러내거든. 서두르고 있어. 배트콩들이 슬슬 피하니까 지휘관들은 전과를 세울 기회가 적어 조바심이 난 거고 또한 사병들은 토끼몰이를 하고 있어. 그러나 그들이 어디 토끼인가? 그들도 무기가 있어. 비록 화력은 약하지만, 유격전에서 특효를 발휘하는 대창이니 독화살이니 등등의 원시무기 사용 기술도 대단하고 지형에 익숙하거든. 우리 마대포 경험해 봤잖나? “ 우리는 수통의 물을 한 모금씩 번갈아 들이켰다.

“언제까지나 토끼몰이 가지고는 안 돼. 언젠가는 당할 수도 있다구,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러 왔건 미국의 요청에 의해 왔건 우리는 한 사람이라도 당해서는 안 되는 것이야. 왜 우리가 이국땅에 와서 다쳐? 백 명의 베트콩을 잡는 것보다 양민 한사람을 보호하라는 뜻은 우리 한 사람의 희생도 없도록 하라는 뜻도 돼. H 하사는 분대장이니까 분대원들의 목숨도 책임져야 하는 것이니 전진할 때 지형지물과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라도 유심히 관찰하도록......“

나는 이제는 한참 자신감에 넘치는 후배 분대장의 호기를 걱정하여 진심어린 충고를 하여주었고 그도 심각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넷 알았슴다. 고참님!” 그는 덩치에 맞지 않게 익살스런 몸짓으로 거수경례를 하였다.     

“알았으면 비나리는 고모령 일발 장진! !     스승님!!”

관망대에서 요란스럽게 종이 울렸다.

“3소대 집합”

“뭐야, 매복 나갈리는 없을 텐데...?”

H 하사가 일어서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3 소대 매복이랍니다. 분대장님”

누군가가 뛰어와 H 하사를 채근하였다.

“매복? 미친 XX들 미친 짓 하고 있어”

그는 볼멘소리를 지르면서 앉아 있는 나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나는 목욕하느라 주머니에 넣어 둔 세이코 시계를 H 하사에게 내밀었다.

“우선 이걸 써. ”분대장 시계“는 내가 구해 줄게”

“아니야. 다른 소대 분대장한테 빌려면 돼. 그 시계 그래 뵈도 야광에다가 나침판도 있어. 분대원들의 시간과 공간을 책임지는 장비라고...“

그는 희죽 웃더니 손을 흔들며 뛰어 나갔다.

장소 3 : 소대는 야영지의 관망대를 뒤로 하고 일열 종대로 개활지를 지나고 있었다. 약 100메타 전방에는 고무나무 숲이 병풍처럼 가로막고 있다. 그 숲 너머엔 바 산 밑자락이 펑퍼짐한 치마속의 둔부처럼  늘어져 있을 것이고  그 밑으로 계곡이 흐를 것이다. 매복지는 바로 계곡의 어느 지점이 될 것이고 이는 19번 도로 주변의 마을로 들어오는 베트콩들을 잡아보자는  작전이다.

그러나 H 하사의 생각엔 여기에 몇 가지의 오류가 있었다. 우선 소대 매복을 하려면 중대가 철수하면서 1개 소대만 아무도 모르게 어느 지점에 떨어뜨려 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가 철수하여 집결한 뒤에 1개 소대만 떨어져 나오는 즉 매복이 아니라 정찰을 하러가는 셈이 되어버렸다.  둘째 너무 늦은 시간에 출발시킨 것이다. 매복이란 아무도 모르게 잠복을 해야 하는데 베트콩들이 활동을 개시하는 시간에 부대를 떠나는 것은 누가 보아도 매복을 하러 간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정찰을 하러 갔다 돌아오는 척 하고 매복을 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때의 출발은 정찰을 하러 가는 왕복 시간보다 최소 한 시간 이상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이 지역은 생소한 곳인데 널따란 개활지를 통과하여야 하는 매복은 아군의 정보를 너무 노출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누군가에 의해 즉흥적으로 생각한 작전이다. 베트콩들을 산토끼쯤으로 생각하고 사냥 게임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나는 베트콩의 입장을 생각해보았지. 어둠이 깃들기 시작한 고무나무 숲을 보면서 조금 전 목욕할 때 이 하사가 이야기한 말들이 생각났기 때문이야. 우리가 그들이라면 그들이 우리를 사냥할 것 같더라고. 나는 소대장에게 아예 개활지에서 매복을 하자고 말했지. 소대장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화를 내더군,“

“H하사 말이 십중팔구 맞는 말인데...”

“소대장 생각도 옳은 이야기였어. 개활지에서의 매복이란 아무 소용없는 짓이고 만일 중대장이나 대대장이 그 사실을 알아차릴 경우 군법회의 감이지.”  

“그건 그렇기도 하지.”

“뭐야? 황희 정승이야?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고... 하긴 결과에 따라서 그 말도 맞는 말이네. 하여튼 나는 그날 매복을 계획한 작전장교나 지시한 중대장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고무나무 숲 앞에서  다시 한 번 소대장에게 건의했지.  각개전투대형으로 숲을 지나, 개울 앞에서 건너편 동정을 살핀 뒤 진입하자고 말이야. 소대장이 더 크게 화를 내면서, 나를 겁쟁이로 몰아붙이더군,  쓸데없는 소리 말고 조금이라도 빨리 매복 지점으로 들어가라고...... 늦으면 늦을수록 더욱 불리하다는 뜻이었지. 할 수 없이 우리는 종대 대형으로 고무나무 숲을 지나 가로 막은 개울을 건너기 시작했어.  물이 별로 많지 않고 바윗돌들이 군데군데 널려져 있는 곳이어서 첨병이 징검다리를 건너는 식으로 여기저기 디딤돌을 밟으며 날래게 건너가기 시작했었지.“

“바로 거기였구나?”

“맞아. 첨병이 거의 다 건너 갈 때쯤 첨병 분대와 우리 분대도 반 이상이 개울에 들어서 있었지. 나도 개울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가 어둑어둑한 속에서 디딤돌들을 가늠하고 있을 때였어. 건너편 언덕에서 불꽃이 여러 개 번뜩이고 누군가 비명을 지르고... 나는 바위 뒤로 미끄러져 들어가면서 응사하라고 소리를 질렀지”

“그때까지는 무사했구먼?”

“아니야. 이미 맞은 것 같았어. 어딘가 허전하고 쓰라린 아픔이 있었지만 그때 응사를 하지  않으면 계속 밀릴 것 같아 나는 쓰러지면서 M16을 연발로 갈겨댔지. 조금 뒤에 또 한 방을 맞은 때에는 총 잡을 힘마저 빠져버리더군,  나는 가슴 높이의 바위 위에 쓸어져 피아의 총알들이 대각선으로 날아가고 날아오고, 수류탄들이 여기저기서 파열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어.  바로 앞에서 K상병의 몸이 붕 뜨는 것도 어렴풋이 보이더군, 놈들은 최소한 20여명도 넘는 것 같았어. 나는 문득 조명탄 타식을 쏘아 올려 위치를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르더군. 그런데 손이 움직이지 않는 거야. 졸립더라고. ”                  

H하사의 환영이 괴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정말로 졸립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조명타식이 몇 발 떠올랐어. 나는 중대장과 같이 관망대로 올라가 어둠을 뚫고 하늘로 떠오르는 불꽃들을 보았지. 그리고 바로 공격 대열에 참가한 거야.”

중대는 화기소대를 남기고 1소대 2소대가 중대장 지휘 하에 하늘과 땅이 어둑어둑한 개활지를  달려 나갔다. 한참을 달려 나가 고무나무 숲이 앞을 가로막은 지점까지 왔을 때 중대장이 대열을 정비했다. 총소리는 이미 멈추어 있었다.           

“1소대 우측 2소대 좌측으로 각개전투대형으로 전진하라”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었다.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3소대장의 풀 죽은 목소리는 사상자들을 데리고 철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무전병은 대대에 헬기 요청을 하느라고 소리소리 지르고 있었다.             

나무들 사이를 이리저리 뚫고 나간 나는 눈앞에 누군가가 대검 꽂힌 M16소총을 거꾸로 밖아 놓고 넋 놓고 있는 어느 병사를 발견했다. 그의 발밑에는 누군가가 쓰러져 있었다.

“누구야?”

“H 하사님입니다. 흐흑” 그는 흐느끼고 있었다.

“이 자식아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 빨리 업혀.”

축 늘어진 H하사의 몸이 등에 업혀졌고 나는 허리가 90도 각도로 휘어진 체 왔던 길을 되돌아나갔다.        

나는 H하사의 몸무게를 감당하느라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나무 사이를 빠져나오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내 어께 밑으로 처진 그의 양 손과 손가락들이 눈앞에서  흔들거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가 아직도 살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목주위로 흘러내린 그의 선혈을 그의 땀방울로 착각했다. 자꾸만 미끄러져 내려가려는 그의 몸을 추스르면서 마음속으로  얼마나 외쳤는지 모른다.

“자식아, 조금만 참아! 헬기가 오고 있어.”

병사들이 몰려왔다. 쓰러지려는 내 몸에서 그의 몸이 풀려나갔다. 그러나 6-7명이 붙잡은 그의 몸둥이는 병사들의 악력을 빠져나가 꿍 소리가 나도록 땅바닥에 떨어져버렸다.

“아, 가고 마는가!”

“맞어, 그때까지 나는 너의 그 포근한 등에 업혀 방금 전의 전투상황을 돌이켜보고 있었지.우리측 피해는 전사가 나를 포함하여 4명, 부상 6명이었는데 당시 내가 한 방 맞고도 바로 응사를 한 것이 더 이상의 피해를 줄인 것이야.  놈들이 주춤하는 사이 모두가 은폐하여  대항할 수가 있었거든. M16 갈기고, 수류탄을 던지고.... 누군가 화염방사기도 발사하더군.“

“나중에 다 들었어. 그 때 이야기, 국립묘지 네 무덤 앞에만 가면 떠벌리거든. 가수는 용감했다고....”

“가수?  그래, 난 최 희준  같은 가수가 꿈이었지만 먹고 사는 게 힘들어 군대에 말뚝을 밖은 거야. 학벌이 없어가지고 간부후보생은 못되었지만, 그래도 나 같은 놈이 여덟 명을 거느린 분대장이 어디야? 분대장.  당시 나는 분대장 역할을 다 했다아. 분대장은  혼자만의 목숨이 아니고 전 분대원의 목숨이기에 나는 기꺼이 총알과 맞선 것이지. 내가 겁쟁이라던 소대장님 사실 월남 신병이었거든.  참, 이 하사 네가 보내준 분대장 시계 잘 받았어. 지금 내 무덤에 같이 있어. 그리고 매년 이곳을 찾아와 준 전우들 모두 모두 고마워.“  

아침잠의 말미에 찾아온 H 하사의 목소리는 낭랑했다.

장소 4 : 국립묘지의 비석에는 H중사로 추서되어 있는 그의 묘지에 솔바람이 불고 있었다.
     
 
--당시 역 매복을 하다가 H하사의 반격에 당황하여 도망친 적들은 미리부터 바 산 중턱에 잠복을 하고 있던 9중대원들에게 모두 잡히고 말았었다. 당시 대대장의 치밀한 작전은 맞아 떨어졌으나 H하사 외 3명의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었다.